▲ 빨간 줄은 걸어서 파란 줄은 차로 이동한 길


태하에서 사동까지 골짜기를 따라 걷고, 사동에서 태하까지는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다. 학포~현포길 중 향목령을 넘는 길이 아름다워 학포옛길도 걷고 싶었는데 학포에서 다시 걷기에 동선이 애매하고, 태하에서 사동까지 터널이 9개나 되기 때문에 해안로를 따라 걷기도 불가능했다. 태하령과 통구미를 넘으려면 높지는 않지만 급경사인 봉을 오르고 내리기를 두 번 해야 한다는 뜻인데 매번 골에 들어서기도 쉽지 않고 숲에 들어서기까지 걷는 길의 상당수가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되어 있어 이미 무릎에 상당히 무리가 간 상태였다.


▲ 한 때는 차도였으나 이제는 숲길 찾아나선 외부인만 찾는 등산로에 접근하는 길이 되었다.


우려했던대로 태하에서 태하령으로 들어서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별다른 표지판이 없어 낯모르는 공장 뒤를 헤매기도 하다 산 중턱의 가정집들을 지나 길을 올랐다. 소형차 한 대가 지나기도 어려울 듯한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었는데 태하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태하에서 학포로 가는 버스를 포함한 차량들이 이 길을 이용했다는 태하-남양 생태길에 안내된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놀라웠다. 태하에서 사동으로 가는 길은 그전에 울릉도를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험난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살아야 했던 울릉도민들의 고단함이 많이 느껴졌다. 전날 대풍감 향나무자생지가 그랬듯 솔송 섬잣 너도밤나무 군락지도 들르지 않고 울릉도를 떠나기엔 아쉬울 만큼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숲길이었다. 아쉬운 건 이 태하령옛길을 걷기 위해 태하에서 령까지 올라오는 길과 령에서 나발동을 걸어야 하는 찻길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울릉도를 걸으며 여러 번 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도민의 편의가 우선이지 여행객의 안타까움이 우선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남서일몰전망대에 가서 남근바위를 구경하고 남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원래는 사동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려 했는데, 터널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안전거리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터널 앞에서 당황하다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타고 울릉자생식물원까지 갈 수 있었다. 울릉자생식물원은 농업기술센터 관할의 식물원인데 울릉군의 특색에 맞게 조촐하게 꾸려 놓았다. 방문하면 행정에서 최소화해 운영하면서도 관광객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꾸며놓았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랫통구미를 걷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었다. 북면은 워낙 봉우리가 높고 경사가 가파라 우선인 듯한데, 서면은 상대적으로 공장과 산나물을 재배하는 밭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길 또한 일주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일반 차량이 이동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울릉도에 오기 전까지는 검색이 잘 되지 않던 La perouse 같은 리조트의 존재도 통구미를 걸으며 알게 되었다. 울릉둘레길 3구간인 남양-옥천 생태길은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 진작에 포기하고 사동-남양 옛길 코스를 걸으려 했는데, 일정을 바꿔 윗통구미는 걷지 않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 근처의 거북바위 인근에서 울릉도에 와 처음으로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았다. 북면에서 자연풍광에 감탄했다면 서면에서는 도시가 아닌 울릉도 지역에서 사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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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에서 현포까지는 바다를 끼고 걷는 평지길이 주를 이루었고, 현포에서 태하까지는 향목령을 넘는 등산로에 가까웠다. 전체 걷기로 계획한 길 중 평지의 비중이 높아 천천히 즐기며 걷고 울릉천국과 예림원을 들러 구경하는 일정을 잡았다.


▲ 이장희 씨와 친분 있는 이들의 서명이 바위에 새겨진 것으로 유명하다.


▲ 울릉천국 전경


가수 이장희 씨가 거주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울릉천국은 오전에 방문해서 그런지 방문객이 보이지는 않았다. 개인정원을 제법 신경써 갖추었기는 하지만, 스탬프북에 사유지를 방문해보라 소개할 만한 장소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공연장이 있기는 하지만 공연을 자주 개최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홍보가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지역의 문화시설로서 역할을 한다고 보이지는 않았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로 주인인 이장희 씨는 여름에 머무는 별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 예림원에 오니 그제서야 관광객을 제법 만날 수 있었다.


예림원도 개인이 꾸리 문자조각공원으로는 양질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이런 점에서 입장료를 내고라도 꼭 방문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할 만한 무언가가 눈에 띄지는 않았다. 특정 장소를 들르며 구경하는 여행객들이라면 주요 장소로 들를 수도 있겠다.


천부에서 현포까지는 차도를 따라 걸었기에 길을 잃을 걱정이 없었으나, 현포에서 태하로 가는 숲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관광안내소에서 단체관광객을 위한 엿공장 뒤로 길이 나 있다고 설명을 들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엿공장에서 차도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숲으로 들어서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표지판이 낮은 고도에서 높은 고도로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고도로 내려오는 사람에게만 보이게 설치되어 있어 찾기가 어려웠다. 표지판 따라 숲에 들어서려면 개인주택과 밭을 지나야 해서 최대한 사유지를 침범하지 않게 소극적으로 표지판을 설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향목령을 넘는 길은 울릉해담길 중 한 곳인데,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보이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숲길이었다. 현포에서 향목령 정상까지 길은 가파르지만 짧고 향목령 정상에서 대풍감까지는 높은 고도를 완만하게 걷는 길이어서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 좋았다. 태하등대는 울릉도 등대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 관광객으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 향나무 자생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광은 한국 10대 비경지역으로 꼽힐 만 하다.


등산로를 따라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걷는 도중 요깃거리할 만한 곳이 없어 허기가 진 상태여서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관리소가 해변가에만 있어 나처럼 편도를 이용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각각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태하는 저동과 도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천부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안정되어있다고 느낀 동네였다. 천부가 기초공사를 하는 공사장 같다면 태하는 기초공사를 마치고 개발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 같다고나 할까. 나름 젊은 취향의 게스트하우스도 위치하고 있고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도 갖추고 있다. 울릉도에서 저동과 도동이 아니고서 개인차량으로 이동하지 않는 여행객이 선택할만한 숙박지역이 마땅치 않은데, 태하는 번잡하지 않게 묵을 만한 대안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했다.




Posted by 앓음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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