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이든 어디서 묵느냐가 그곳에 대한 이미지를 상당 부분 좌지우지한다. 나름 여행을 준비할 때 숙박을 신경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황금연휴 숙박 예약의 곤란
2017년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5박 6일은 황금연휴로 대부분의 숙박업소가 만원이었다. 호텔과 여관, 펜션은 여행사 중심으로 예약이 완료된 상태였고, 차선으로 민박을 알아보았지만 우선 2박 이상이 아니면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그나마 방이 없다고 난리였다. 나중에는 재워만 준다고 하면 어디든 묵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보여행을 하려 했기 때문에 차를 빌리지 않아, 시내에 묵어야 한다는 것도 제약조건이었다. 울릉도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집을 짓고 살만한 평지가 적다. 군민 다수가 관광업을 하고 있지만, 숙소의 양질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다.
숙박은
4/30~5/02 까치펜션 : 도동 위치
5/02~5/04 천부펜션 : 천부 위치
5/04~5/06 솔향기펜션 : 태하 위치
로 예약하였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까치펜션 주인이 예약을 이중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급하게 다른 빈 민박집을 연결해주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숙박업소가 바뀐 것이 더 나았다. 까치펜션은 찻길 바로 옆 상가 2층인데, 방 2개에 화장실이 하나라 옆방 손님과 함께 묵는 일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4/30에 현정이네민박에서, 5/01은 부산민박에서 묵게 되었다.
현정이네민박 : 4/30
현정이네민박의 가장 큰 장점은 집 앞에 작은 정원이 있고 그 앞이 탁 트여있다는 것이다. 다른 민박이라면 가건물을 들여놓고 방을 하나 늘렸을텐데, 이 민박집에는 야생꽃을 가꾼 정원에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의자에 앉아 도동항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제법 좋다. 흔들의자 옆에는 데크가 있어 구울거리를 사오면 바베큐를 할 수 있다. 바로 전에 까치펜션에서 나온지라 번잡한 찻길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방문하면 대로에서 벗어나있어 첫눈에 찾아보기 어렵고 부지가 높은게 흠일 수도 있지만, 소란스러운 숙소를 선호하지 않는 내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벽을 한 가득 채우고 있는 병따개가 민박 주인 분의 여행 내공을 말해주고 있었고, 화장실 안의 샴푸나 린스 등을 여러 종 구비해놓고 선택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든가 그 통마다 이름을 적어두었다든가 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주인 스스로가 여행을 다니면서 좋았던 지점들을 민박에 적용한 듯하다. 여느 민박이 그렇듯 집 한 채에 거실, 주방 1, 화장실 1, 방 2개인 구조인데, 대여섯 정도의 팀이 함께 와서 묵고 저녁에는 BBQ를 즐기기 적합한 민박이다. 주인 내외는 옆 별채에 묵으신다. 대신 방값은 다른 비슷한 수준의 민박에 비해 1만 원 가량 비싸다. 그럼에도 다시 울릉도를 방문한다면 이 민박에 묵을 의향이 있다.
부산민박 : 5/01
다세대주택의 2층집을 민박으로 3층집을 주인이 거주하는 형태의 민박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어 스스로 찾아가기는 매우 어렵다. 2층 독채라고 하지만 방보다 작은 거실 1, 주방 1, 화장실 1, 방 1개인 구조라 두 팀 이상이 묵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방에서 할머니 냄새 나는 평범한 민박집이었다. 이 집의 장점은 주인의 음식솜씨다. 울릉도에서는 숙박 외 아침 또는 저녁을 민박에서 차려주고 인수대로 비용을 받는 관례가 있는데, 이집은 그 중 반찬이 가장 풍성했고 맛도 좋았다. 울릉도 식당의 밥값이 워낙 비싸고 가성비 좋은 식당 찾기가 쉽지 않아, 민박 주인 분의 솜씨가 좋다면 민박에 묵으며 식사하는 것을 추천한다.
천부펜션 : 5/02~5/04
이 펜션을 예약한 까닭은 한 블로거의 극찬 때문이었다. 울릉도 민박을 이용한 후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천부에서 민박을 추천한 블로그는 이것 하나를 찾았다. 민박이야 비슷비슷하겠거니 생각하고 예약했는데, 기대를 해서였는지 가장 크게 실망한 민박이었다.
이 민박은 거실 1, 주방 1, 화장실 1, 방 2개로 구성된 2층(본건물 2층 옆 가건물에 방 1개와 화장실 1개가 딸려있다.)과 방만 3개 있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찻길에서 바로 보이는 민박이라 찾기 수월했다. 도착하자마자 이곳도 예약을 이중으로 받았다고 했다. 예약할 때 선급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여러 차례 괜찮다고 하셔서 왔는데 당황스러웠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드렸더니 그제서야 묵어도 되지만 돈을 더 내라고 하셨다. 상당히 불쾌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예약금을 받지 않은 이유는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을 할 줄 모르시는지라 예약이 취소되면 받은 선급금을 돌려주기 번거로워서였다.
3층 바다가 보이는 방을 배정 받았다. 일단 3층은 가건물이라 5월이었는데도 웃풍이 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온수를 켜면 보일러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가 바로 내가 묵는 방 창문으로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누가 연통을 설치했는지는 몰라도, 3층에 가족이 거주한다 생각하면 웃어넘길 수 없는 착오다. 그 방은 주로 창고로 이용했는지 이불을 포함한 이런저런 짐이 쌓여 있었는데, 무엇보다 냉방기가 없었다. 주인 분이 올봄에 돈을 벌어 여름 손님 받으려 에어컨을 설치해야겠다 하셨는데, 아마 설치하셨을 것이다. 찻길에 맞닿은 방이라 공사차량이 지나가는 소리로 여러 차례 잠에서 깼다.
주인은 한 명인데, 2층 본채에 단체 1팀, 2층 가건물에 1팀, 3층 3팀을 받은지라 난리가 아니었다. 화장실이 하나니 샤워를 하려면 줄을 서 기다려야 했고 (별채에 화장실이 있다는 건 다음날 알게 되었다.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화장실 앞 세탁기 코드가 화장실 안에 있어,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화장실 문을 닫을 수 없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천부에 식사할만한 곳이 없어 아침식사를 부탁 드렸는데, 한 팀 먹고 다음 팀 먹고 하는 식이라 주인 분의 힘들다는 넋두리를 들으며 식사를 기다려야 했다. 식사의 양질도 좋다고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민박을 하신지 몇 년 안 되었다고 하셨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이 미숙한 편이셨다.
아마 저 블로그를 쓰신 분은 비수기에 가셔서 환대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시기마다 취향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내 경험으로 이 민박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솔향기펜션 : 5/04~5/06
무난한 숙소였다. 1층은 주인 거주용으로 2, 3층은 숙박업 전용으로 신축한 건물이다. 복도에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가 있고, 방 1개에 방마다 화장실 1개가 딸려 있다. 그전까지 묵었던 민박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빨래건조용 빨랫줄이 최첨단 시설처럼 느껴졌다. 말 그대로 숙박업소인지라 별다른 장점도 약점도 없는 무난한 숙소였다. 숙소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버스가 오고갈 때마다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태하가 한적한 마을인 편이라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이름이 왜 솔향기일까 궁금했는데 창문을 잠깐 열어두었더니 송진이 금방 날아와 쌓인 것을 보고 소나무가 많은 동네라는 걸 알았다. 바다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3분이면 바다가 보이는 풍광에 닿을 수 있다. 부엌이 없는 숙소가 울릉도 와서 처음이라 어떻게 식사를 해야 할지 잠시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적당히 친절하고 불편하지 않게 묵을 수 있는 곳이다.
울릉도 민박은, 4인 이상이 아침은 부탁하고 저녁은 해먹기에 좋다.
울릉도에서 호텔이나 모텔에 묵어보지는 않아 평할 수 없고 펜션이라 이름 붙인 곳 역시 상식적으로 민박으로 통용할 수 있는 곳이기에, 내게 누군가가 울릉도에서 숙소를 찾고 있는데 민박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아침은 주인에게 부탁해 먹고 저녁은 먹을거리를 사와 해먹을 4인 이상의 팀에게 적합한 숙소라고 추천하고 싶다. 대부분의 민박이 방 2개, 화장실 1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낯 모르는 이들과 한 민박에 묵기가 불편하다. 많은 민박 주인이 숙박 못지않게 민박객 대상 식사를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식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주인의 친절도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매 끼니 민박 주인에게 식사를 부탁할 수는 없으니 아침은 부탁해 챙겨먹고 점심은 외식하고 저녁은 민박에 들어오는 길에 장을 봐서 부엌을 빌려 해먹는 방식을 추천한다. 매 끼니를 매식하기에 울릉도 식비가 만만치 않다.
물론 이건 단 한 번 울릉도를 관광한 개인 소견이니, 참고하여 울릉도 여행계획을 짜시기 바란다. 덧붙여, 가격을 적지 않은 것은 인수와 구성 무엇보다 방문시기에 따라 민박 가격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통상 1방에 1박 5만 원 정도면 무난하다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